반 가니아 / Verne Gagne



본명 : 라반 클라렌스 가니아 (LaVerne Clarence Gagne)
키/몸무게 : 5피트 11인치, 215파운드
출생일 : 1926년 2월 26일
출신지 : 미국 미네소타주 로빈스데일
레슬링 데뷔 : 1949년
은퇴 : 1981년
피니쉬 기술 : 슬리퍼 홀드
닉 네임 : AWA의 제왕, 미네소타의 강호

코코란의 한 농장에서 자란 그는 그가 14세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집을 떠나 로빈스데일 하이 스쿨에서 풋볼과 야구,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 1943년 미네소타 대학에 진학하여 풋볼을 하다가 1년 뒤에 해병대로 입대했다. 해병대에서 그는 엘 토로, 캘리포니아에서 해병대 풋볼 팀으로 활약했다. 그 후 전역을 결심하고 미네소타 대학으로 돌아온 그는 풋볼과 레슬링에서 최고의 운동선수로서의 평판을 받았다. 아마추어 레슬링에서는 1948년에는 런던 올림픽에 자유형 부문에 올림픽 대표로 선택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NCAA를 1948년과 49년에 두번이나 우승했으며, 빅 텐 레슬링을 4회나 석권 (1944, 1947, 1948, 1949년)하고 1949년에는 AAU를 석권. 풋볼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 1949년에 시카고에서 열린 NFL 챔피언 팀인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상대로 대학 올스타 팀으로 맞붙기도 했다. 그 후 NFL 팀인 그린 베이 파커스에서 단기간 활약.

만능 스포츠 선수라는 간판으로 NWA의 미니아폴리스 지구의 프로모터인 토니 스테쳐에게 스카우트 되어 1949년 에이브 카쉬를 특별 심판으로 나온 복싱 챔피언이었던 잭 뎀프시가 보는 앞에서 데뷔전 승리. 1950년에는 NWA 주니어 헤비웨잇 챔피언이 되었으며, 1953년에는 NWA US 타이틀 (시카고 버전)을 획득했다. 1953년 2월 4일에 그는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리는 이벤트의 헤드라이너였는데, 그를 보기 위해 왔던 팬들 중 5000명이 경기를 보지 못해 폭동을 일으키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을 정도로 반 가니아는 프로레슬링이 TV에 방영되던 황금기의 최고 스타였으며 그의 테크니컬한 레슬링은 수많은 관중들을 열광케 하였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는 1950년대 레슬러들 중에서 가장 높은 돈을 벌었으며 연간 1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당시 NWA 헤비급 챔피언인 루 테즈 등과 대등한 수준의 메인 이벤터급 선수가 되었지만 정치적인 대우면에서 NWA 연맹 회장인 샘 뮤닉 등과 충돌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57년 6월 14일에 시카고에서 에드워드 카펜티어가 NWA 헤비급 챔피언인 루 테즈를 꺾고 NWA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그러나 NWA는 심판원의 결정을 뒤엎고 NWA 헤비급 타이틀을 루 테즈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네브라스카를 포함한 몇몇 연맹 지역에서 이를 반대하고 카펜티어를 NWA 헤비급 챔피언으로 인정했다. 1958년 8월 오마하에서 에드워드 카펜티어를 꺾고 NWA 챔피언이 되었다. 그러나 NWA 연맹 회장인 샘 뮤닉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프로모터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 충돌은 계속되어 1960년 5월에 미네소타 지구의 프로모터들과 함께 NWA 연맹을 떠나 미니아폴리스를 본거지로 하는 American Wrestling Association (AWA)를 창설했다.

1960년 5월 AWA를 창설하고 반 가니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AWA 헤비급 챔피언이 되어 AWA의 간판 선수로 맹 활약했다. 1961년 9월 16일에는 돈 레오 조나단을 누르고 오마하 버전 월드 타이틀을 획득. AWA로 옮기고 반 가니아는 10회나 AWA 타이틀을 허리에 둘렀으며, 또한 1968년 8월 31일에 AWA 챔피언에 오른 후 1975년 11월 8일에 닉 복윙클에게 패하기까지 약 7년동안이나 AWA 챔피언으로 군림. 진 키니스키, 빌 밀러, 프릿츠 본 에릭, 닥터 X, 더 크러셔, 레이 스티븐스, 매드 독 바션, 닉 복윙클 등과 대립해오면서 AWA 타이틀을 지키고 획득해 왔으며 항상 선역으로써 그들과 대립해왔다.

한편 1970년 2월에 국제 프로레슬링 참전을 위해 일본으로 방문. 동시에 국제와 업무 제휴를 맺어, 이후 부커로서 다수의 선수를 일본으로 보냈다. 1974년 11월의 반 가니아, 닉 복윙클, 빌 로빈슨, 레이 스티븐스의 AWA 4대 스타가 활약한 시리즈는 팬들 사이에서 전설로 일컬어진다. 다만, 비즈니스에 관해서 상당히 엄격하다고 알려져 부킹 수수료 부담에 참다 못한 국제가 AWA와 제휴를 해소한 요인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그 후에도 가니아나 닉이 단발적으로 국제에 참전했다.).

1979년 6월 6일에는 매드 독 바션과 태그로 팻 패터슨, 레이 스티븐스를 꺾고 AWA 태그 타이틀을 획득했다. 1981년 1월 18일에는 자이언트 바바 3000 시합 연속 출장 돌파 기념 시합에 바바의 PWF 타이틀과 가니아의 AWA 타이틀을 놓고 더블 타이틀 매치로 격돌하기도 했다. 넉달 뒤 5월에 AWA 타이틀을 가진 채로 은퇴했다. 은퇴 후에도 간간히 경기를 뛰었는데, 1986년 4월 20일 레슬락에서 아드난 알-카시를 스틸 케이지 매치로 격돌해 승리했다.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프로모터로서도 반 가니아는 진가를 발휘해 왔는데, 젊은 시절의 앙드레 더 자이언트, 마사 사이토, 닉 복윙클 등 강호 선수를 AWA 소속 선수로 내세워 단기간에 NWA의 라이벌 단체로 성장했으며, AWA의 경기들은 ESPN에서 방영되어 뉴욕, 캘리포니아, 캐나다, 멕시코에서 AWA 경기를 볼 수 있었으며 유럽과 중동에도 방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릭 플레어 등 무수한 명 레슬러들을 스카우트, 육성한 것으로도 유명. 트레이너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마추어 레슬링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던 가니아는 레슬링의 기초가 견실한 레슬러를 중용하는 경향이 짙었고 그의 아들인 그렉 가니아가 뒤를 이어 프로레슬러가 되어 AWA의 간판 선수로 밀어보려는 의도를 보였지만 실패. 그가 은퇴하고 난 후 두각을 드러낸 헐크 호건이나, 로드 워리어즈 등 화려한 파워 파이터에게는 회의적인 입장과, 그들의 상품 가치를 믿지 않아 1983년 이후 WWE의 프로모션 전략에 밀려 유력 소속 선수가 차례로 AWA를 떠났다 (주 1). 가니아는 단체 회생에 갖은 노력을 쏟았지만 AWA의 인기는 식어져만 갔다. 결국 AWA는 1991년에 문을 닫았고 가니아는 파산을 선언했다.

그 뒤 미니아폴리스 교외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으며 오랫동안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않다가 2006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초 이를 거부했던 반 가니아였지만 아들인 그렉 가니아의 설득으로 헌액을 받아들였다. 반 가니아는 WWE 역사상에는 “라이벌 단체의 보스” 로 밖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WWE의 전신인 WWWF 설립 이전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주역이기도 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알려졌으며, 그의 헌액을 계기로 WWE 역사와 관계 없는 다른 NWA, AWA 선수들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 시작했다.

- 타이틀 획득 -

- Big Ten (Amateur) Wrestling Champion (1944)
- Big Ten (Amateur) Wrestling Champion(2) (1947)
- Big Ten (Amateur) Wrestling Champion(3) (1948)
- NCAA (Amateur) Wrestling Champion (1948)
- NCAA (Amateur) Wrestling Champion(2) (1949)
- Big Ten (Amateur) Wrestling Champion(4) (1949)
- AAU (Amateur) Wrestling Champion (1949)
- NWA Texas Heavyweight Champion (12/16/49 - 1/13/50)
- NWA Texas Heavyweight Champion(2) (9/08/50 - 10/27/50)
- NWA World Junior Heavyweight Champion (11/13/50 - 11/19/51)
- AWA Montreal World Heavyweight Champion (2/25/53 - 5/06/53)
- AWA United States Heavyweight Champion (9/03/53 - 4/07/56)
- NWA Texas World Tag-Team Champion w/ Wilbur Snyder (7/57 - ??)
- NWA Minneapolis World Tag-Team Champion w/ Bronco Nagurski (12/26/57 - 3/22/58)
- AWA United States Heavyweight Champion(2) (4/12/58 - 8/16/60)
- NWA Minneapolis World Tag-Team Champion(2) w/ Leo Nomellini (5/15/58 - 58)
- Omaha World Heavyweight Champion (8/09/58 - 11/15/58)
- NWA Minneapolis World Tag-Team Champion(3) w/ Butch Levy (4/28/59 - 6/59)
- NWA Minneapolis World Tag-Team Champion(4) w/ Leo Nomellini (7/19/60 - 8/60)
- AWA World Heavyweight Champion (8/16/60 - 7/11/61)
- AWA World Heavyweight Champion(2) (8/08/61 - 1/09/62)
- Omaha World Heavyweight Champion(2) (9/16/61 - 7/31/62)
- AWA World Heavyweight Champion(3) (8/21/62 - 7/09/63)
- Omaha World Heavyweight Champion(3) (8/25/62 - 2/15/63)
- AWA World Heavyweight Champion(4) (7/20/63 - 7/27/63)
- Omaha World Heavyweight Champion(4) (7/20/63 - 7/27/63)
- AWA World Heavyweight Champion(5) (8/08/63 - 11/16/63)
- Omaha World Heavyweight Champion(5) (9/07/63 - 11/16/63)
- AWA World Heavyweight Champion(6) (12/14/63 - 5/02/64)
- AWA World Tag-Team Champion w/ Moose Evans (2/09/64 - 2/23/64)
- AWA World Heavyweight Champion(7) (5/16/64 - 10/20/64)
- AWA World Tag-Team Champion(2) w/ Crusher Lisowski (7/24/65 - 8/07/65)
- AWA World Heavyweight Champion(8) (2/26/67 - 8/17/68)
- AWA World Tag-Team Champion(3) w/ Don Leo Jonathan (3/15/67 - 67)
- AWA World Heavyweight Champion(9) (8/31/68 - 11/08/75)
- AWA World Tag-Team Champion(4) w/ Bill Robinson (12/30/72 - 1/06/73)
- AWA World Tag-Team Champion(5) w/ Mad Dog Vachon (6/06/79 - 7/20/80)
- IWA World Heavyweight Champion (11/13/79 - 11/16/79)
- AWA World Heavyweight Champion(10) (7/18/80 - 5/19/81)

주 1 : 1983년 호건이 AWA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가니아는 처음부터 호건을 챔피언십을 할 정도로 큰 비중을 두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닉 복윙클과 경기를 요구했고 가니아는 복윙클과 경기에서 호건에게 계속 타이틀을 주지않았고 결국 지쳐버린 호건은 일본으로 경기를 위해 떠났고, 1983년 말 빈스 맥마흔과 접촉해 WWE로 이적했다. 1984년 호건이 아이언 시크의 WWE 타이틀에 도전했고 이때 가니아가 아이언 시크에게 WWE 타이틀 매치에서 호건의 다리를 부러뜨리면 10만 달러와 함께 AWA로 이적하면 AWA 타이틀을 약속했다. 그러나 시크는 이를 거절했으며 이를 호건, 빈스 맥마흔, 팻 패터슨에게 알렸다. 반 가니아는 이에 대해 완강히 부정하고 있으며, 2005년 발매 된 Greatest Superstars of the '80's WWE라는 DVD에서 아이언 시크는 이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하고 있다.

by Cactus™ | 2008/12/17 23:47 | 레슬러 프로필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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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청도 받습니다. 물론 블로그 주인이 몹시 게으르고, 영어, 일어가 안되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됩니다. - 2008. 12. 18 Update - KENTA 다이너마이트 키드 반 가니아 브렛 하트 스즈키 미노루 (11. 16) 하시모토 신야 (11. 16) -현재 작성 완료, 게시 대기- 미사와 미츠하루 (업데이트) 카와다 토시아키 (업데이트) 스탄 한센 ... more

Commented by 공국진 at 2008/12/18 10:52
이 선수가 AWA 탄생의 시발점이 된 선수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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