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14일
미사와 미츠하루 / 三沢光晴 / Mitsuharu Misawa

본명 : 미사와 미츠하루(三沢光晴)
태어난 날 : 1962년 6월 18일 - 2009년 6월 13일
키/몸무게 : 185cm, 110kg
출신지 : 일본 사이타마현 코시가야시
레슬링 데뷔 : 1981년 8월 21일(vs 고시나가 시로)
피니쉬 기술 : 에메랄드 플로전, 타이거 드라이버 91
주 기술 : 엘보, 머신건 엘보, 점핑 엘보, 원투 엘보 패드, 스피닝 엘보, 롤링 엘보, 런닝 엘보, 스핀 킥, 점프 킥, 선회식 플란차, 울트라 타이거 드롭, 엘보 스이시다, 페이스 락, 리버스 넬슨 데스락, 플라잉 래리어트, 타이거 스플렉스 84, 타이거 스플렉스 85, 나락식 타이거 스플렉스, 선회식 백드롭, 타이거 스플렉스, 프로그 스플래쉬, 캥거루 킥, 몽키 플립, 센턴
닉 네임 : 미스터 삼관, 엘보우의 귀공자, 방주의 맹주, 언터쳐블, 유리의 에이스, 에로 사장, 좀비, 접수의 천재, 언터쳐블, 좀비 미사와, 초세대의 기수
캐리어 전반 :
중학교 무렵 프로레슬링을 보기 시작한 미사와는 보는 것만이 아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진로 희망란에 프로레슬러라고 작성해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1977년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프로레슬러가 될 것을 어머니께 말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라는 말을 들었으며 중학교 담임선생님에게는 프로레슬링을 하겠다면 아마추어 레슬링을 하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받아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한다. 그후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 생활, 아마추어 레슬링을 시작한 미사와는 고등학교 2학년때에는 기숙사를 빠져나와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무소에 입문하러 가고, 마침 사무소에 있던 점보 츠루타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라는 설득을 받아 돌아온다. 1980년 고등학교 3학년때는 국체 체육대회 자유형 87kg으로 우승. 라이벌인 카와다 토시아키와는 이때 만났다. 1981년 3월에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한다.
전일본 입문 당시 연습생의 급료는 5만엔이었는데 미사와만은 사장인 자이언트 바바에게 특별히 7만엔을 받았다. 8월 21일에는 사이타마 우라와 경마장 정문 앞 특설 링에서 고시나가 시로와 데뷔전을 가져 5분 6초만에 패했다. 10월 9일에는 모모타 미츠오와 태그로 데뷔한지 18전만에 첫 승리를 장식한다. 10월 13일에는 삼손 후유키를 누르고 데뷔한지 20전만에 싱글전 첫 승리를 거두었다. 1982년 도쿄 스포츠 제정 연간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제 1회 수상자인 후지나미 타츠미 이래 폐지되었던 신인상을 수상. 1983년 4월 22일에는 루 테즈배 쟁탈 리그전 우승 결정전에서 고시나가 시로에 패하여 준우승에 그치지만 자이언트 바바 사장의 특혜로 우승자만이 해외 원정에 떠날 수 있었지만 준우승자인 미사와도 해외 원정을 떠날 수 있게 된다. 5월 20일에는 최초로 아시아 태그에 고시나가 시로와 도전. 이후 약 1년간 점보 츠루타의 심부름꾼으로 일한다. 1984년 3월 6일 고시나가 시로와 멕시코 원정을 떠났다. 멕시코에서 링 네임을 피닉스 미사와로 하려했지만 고시나가의 좀 더 일본인이라는 걸 강조한 이름이 좋을거같다는 조언에 가미가제 미사와로 결정. 3월 16일 6인 태그전에 참가하면서 멕시코 데뷔전을 가져 4월 6일에는 엘 사타니코의 NWA 월드 미들급 타이틀에 도전. 7월 경에는 멕시코에 바바 사장의 호출로 7월 26일에 극비 귀국한다.
타이거 마스크 2세
극비 귀국 후에는 공수 특별 훈련을 받고 킥의 향상을 위해 자이언트 바바, 그리고 특별 훈련 파트너로 카와다 토시아키와 하와이로 특별 훈련을 떠났다. 7월 31일에는 타이거 마스크 2세로써 도쿄 구라마에 국기관에 첫 등장. 8월 26일에는 타이거 마스크 2세 데뷔전을 가져 라 피에라를 타이거 스플렉스 84를 선보여 승리. 1985년 2월 1일 고바야시 쿠니아키와 시합 도중 토페 스이시다의 실수로 철책에 머리를 받아버리면서 부상을 입은 데다가 왼쪽 무릎에 물이 차는 증상까지 오게 되어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시합을 결장한다. 6월 21일에는 고바야시 쿠니아키의 NWA 인터 주니어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패한다. 그후 무릎 부상의 치유를 위해 결장. 결장 기간 중에는 헤비급 전향을 위해 체중을 약 10kg 이상을 늘렸다. 8월 31일 고바야시 쿠니아키의 NWA 인터 주니어 타이틀에 도전하여 타이거 스플렉스 85로 승리. 10월 28일에는 차보 게레로를 꺾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지만 헤비급 전향의 위해 타이틀을 반납했다. 1986년 4월 18일~22일에 바바사장, 와지마 히로시와 미국 원정을 위해 시합을 결장한다. 7월 31일부터 맹호 7번 승부를 그레이트 가부키와 0전으로 시작. 11월의 세계 최강 태그 리그전에 자이언트 바바와 태그로 첫 출전한다.
맹호 7번 승부 결과
0전 1986년 7월 31일 그레이트 가부키/승리
1전 1986년 10월 야츠 요시아키/패배
2전 1987년 2월 3일 프랭크 런 캐스터/승리
3전 1987년 3월 릭 플레어/패배
4전 1987년 4월 아수라 하라/반칙승
5전 1987년 6월 텐류 겐이치로/패배
6전 1987년 7월 19일 테드 디비아스/승리
7전 1988년 3월 9일 점보 츠루타/패배
1987년 1월 2일에는 100만엔 쟁탈 신춘 슈퍼 배틀 로얄을 우승. 7월 3일에는 점보 츠루타와 태그로 스탄 한센, 테드 디비아스의 PWF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여 링 아웃으로 승리하면서 제 3대 챔피언에 오르지만 7월 11일에 디비아스, 한센과 재경기를 가져 패한다. 10월 14일에는 처음으로 오가와 요시나리와 태그를 이루었다. 11월의 세계 최강 태그 리그전에 나카노 신이치와 출전한다. 1988년 1월 2일에 AWA 헤비급 챔피언 커트 헤닉을 링 아웃으로 승리하지만 타이틀 획득은 없었다. 4월 26일에는 약혼을 발표. 바바 사장은 "28세까지 결혼하지 말아라"라는 당부를 하지만 5월 10일에 결혼식을 올려 타이거 마스크의 정체를 발표. 6월에는 스스로 리더가 되어 나카노 신이치, 다카노 슌지, 타우에 아키라, 타카기 이사오와 궐기군을 결성한다. 9월 1일에는 자니 에이스에게 다이빙 엘보 드롭을 실패하여 무릎의 인대를 잘랐다. 9월 3일부터 6일간 시합을 결장. 11월의 세계 최강 태그 리그전에 지미 스누카와 출전. 11월 24일에 코바시 켄타와 태그로 첫 대결을 가져 승리한다.
타이거 졸업
1989년 3월 8일에는 릭키 스팀보트의 NWA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패배. 4월 20일 관동 중앙 병원에 입원하여 왼쪽 무릎의 십자 인대 단렬 수술을 하였고 이즈음에 자이언트 바바 사장이 "전혀 궐기한게 없다"고 지적. 궐기군은 해산된다. 1990년 1월 2일 300일만에 복귀한 미사와는 3월 6일에 코바시 켄타와 최초로 싱글전을 가져 승리했다. 4월 9일에는 코바시 켄타와 태그로 더그 파나스, 대니 크로팟을 누르고 아시아 태그 챔피언에 오른다. 4월 13일에는 전일본/신일본/WWE의 합동 흥행인 “일/미 레슬링 서밋”을 도쿄돔에서 개최되어 미사와는 이날 브렛 하트와 경기를 가져 20분 초과 무승부로 종료. 5월 14일에는 카와다 토시아키와 태그로 야츠 요시아키, 삼손 후유키와 경기를 가졌는데 시합 시작부터 마스크의 줄을 풀어버리려는 상대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카와다에게 마스크 뒤의 줄을 풀어줄 것을 부탁하여 스스로 마스크를 벗어버리면서 맨얼굴의 미사와 미츠하루로 돌아왔다.
점보를 이겼다!
5월 17일에는 아시아 태그 첫 방어에 성공하는데 동시에 타이틀을 반납한다. 6월 8일에는 점보 츠루타를 꺾어버리는 파란을 보여주었다. 8월 2일에는 스스로 리더가 되어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후에 츠루타군으로 이적), 코바시 켄타, 키쿠치 츠요시, 아사코 사토루(당시 연습생)와 초세대군을 결성. 9월 1일에 점보 츠루타와 삼관 헤비급 타이틀전을 다지지만 패하였다. 연말의 최강 태그 리그에는 카와다와 태그로 출전. 1991년 1월 2일에는 결장한 바바 사장을 대신하여 선수회장으로서 신년 인사를 했다. 1월 26일에는 타우에 아키라의 시련의 7번 승부의 7번째 상대자로 경기를 가져 이날 첫 공개한 타이거 드라이버 91로 승리한다. 2월 26일에는 카와다와 태그로 테리 고디, 스티브 윌리엄스의 세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패하였다. 4월 17일에 점보 츠루타의 삼관 타이틀에 도전한다. 6월 7일에는 카와다와 태그로 대니 스파이비, 스탄 한센의 세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패배. 7월 24일에 카와다와 다시 스티브 윌리엄스와 테리 고디의 세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여 승리했다. 9월 4일에는 타우에 아키라, 점보 츠루타와 세계 태그 타이틀을 방어했다. 이후 세계 최강 태그 리그전 출전을 위해 타이틀을 반납한다.

타이거 드라이버 91!
10월 14일에 츠루타의 엘보우에 부상을 입고 강행 출장하지만 10월 16일~24일에 코의 증상이 악화되어 결장한다. 1992년 3월 4일에 스탄 한센의 삼관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패배. 6월 5일에 코바시와 태그로 츠루타, 타우에의 세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패한다. 7월 21일에 왼쪽 어깨 탈구 및 인대 손상의 부상을 입어 결장에 들어갔다. 8월 22일에는 스탄 한센의 삼관 타이틀에 다시 도전. 여기서 패배하면 최하 1년은 도전하지 않겠다는 공언을 하는 배수의 진을 친 끝에 승리. 삼관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불침함, 침몰 하다.
10월 21일에 카와다 토시아키의 도전을 받아 삼관 타이틀을 방어. 12월 4일 세계 최강 태그 리그전을 카와다와 태그로 타우에 아키라, 아키야마 준을 꺾고 우승과 동시에 제 20대 세계 태그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삼관과 세계 태그를 합쳐 5관 챔피언이 된다. 하지만 1993년 1월 30일에 테리 고디, 스티브 윌리엄스에 패하여 세계 태그 타이틀을 내주었다. 2월 28일에는 타우에 아키라를 꺾고 삼관 타이틀 2번째 방어에 성공한다. 4월 12일에는 그동안 미사와의 든든한 태그 파트너였던 후배 카와다 토시아키가 정식으로 초세대군 이탈을 표명. 태그가 해체되면서 미사와는 코바시와 태그를 결성한다. 5월 21일에는 스탄 한센을 꺾고 3번째 방어에 성공. 6월 1일에는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의 성귀군의 세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패한다. 7월 29일에는 카와다 토시아키의 도전을 받아 타이거 스플렉스로 삼관 타이틀 4번째 방어에 성공했다. 9월 3일에는 스티브 윌리엄스를 꺾고 5번째 방어에 성공. 10월 23일에 스탄 한센의 도전을 받아 경기 도중 흉골에 금이가는 부상을 당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승리. 삼관 타이틀 6번째 방어에 성공한다. 12월 3일에는 성귀군을 물리치면서 세계 최강 태그 리그 우승과 함께 제 24대 세계 태그 챔피언에 올랐다. 1994년 3월 21일 챔피언 카니발 리그전중 더그 파나스와 시합중에 목과 허리를 부상당하여 리그전을 포기. 그리고 약 일주일간 결장한다. 5월 21일에는 성귀군을 누르고 세계 태그 첫 방어에 성공했다. 6월 3일에는 카와다 토시아키를 1991년 첫 공개 이후 봉인하고 있었던 타이거 드라이버 91을 꺼내어 승리. 7번째 삼관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다. 7월 22일에는 스티브 윌리엄스, 자니 에이스를 누르고 세계 태그 2번째 방어에 성공했다.

3년만에 봉인이 풀린 타이거 드라이버 91!
7월 28일에는 스티브 윌리엄스에게 패하여 삼관 챔피언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후 세계 최강 태그 리그전을 위해 세계 태그 타이틀을 반납. 12월 10일에는 스티브 윌리엄스와 자니 에이스를 꺾고 세계 태그 리그 우승과 동시에 제 25대 세계 태그 챔피언에 올랐다.1995년 1월 24일 성귀군의 도전을 받아 세계 태그 타이틀전을 가져 60분 시간 제한 무승부로 첫 방어에 성공한다. 3월 4일에는 스티브 윌리엄스와 자니 에이스를 꺾고 세계 태그 2번째 방어에 성공했다. 4월 6일에는 시합중에 카와다의 킥이 미사와의 왼쪽 눈에 실수로 맞으면서 좌안와 골절 진단을 받고 의사의 시합 출전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행 출장. 4월 15일에 타우에 아키라를 꺾고 챔피언 카니발 첫 우승을 이루었다. 5월 26일에는 스탄 한센을 꺾고 삼관 챔피언에 등극. 6월 9일에 성귀군에 패하여 세계 태그 타이틀을 내주었다. 7월 24일에 카와다의 도전을 받아 삼관 타이틀 첫 방어에 성공했다. 10월 15일에는 성귀군에 다시 재도전하였지만 60분 시간제한 무승부로 타이틀 탈환에 실패했다. 10월 25일에는 코바시의 도전을 받아 승리하여 3번째 방어에 성공. 세계 최강 태그 리그에서는 성귀군을 누르고 우승. 3년 연속 3번 우승을 이루어 냈다. 1996년 3월 2일에는 게리 올브라이트를 꺾고 삼관 4번째 방어에 성공. 5월 23일에 아키야마 준과 태그로 타우에 아키라, 카와다 토시아키의 세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여 승리하면서 제 29대 세계 태그 챔피언에 오른다. 하지만 하루 뒤 24일에는 타우에 아키라에 패하여 삼관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6월 5일에는 스티브 윌리엄스, 자니 에이스를 누르고 세계 태그 첫 방어에 성공. 7월 9일에는 성귀군을 누르고 세계 태그 2번째 방어에 성공한다. 하지만 9월 5일에 스티브 윌리엄스와 자니 에이스에 패하여 세계 태그 타이틀도 내주게 된다. 연말의 최강 태그 리그전에는 아키야마와 태그로 출전하여 준우승의 성적을 냈다.
1997년 1월 20일에는 코바시 켄타를 꺾고 제 17대 삼관 챔피언에 올랐다. 타이거 드라이버 91과 타이거 스플렉스 85가 한시합에 모두 나온 것은 이 경기가 처음이라 한다. 3월 1일에는 스티브 윌리엄스를 누르고 삼관 첫 방어. 4월 19일에는 챔피언 카니발 우승 결정전에서는 동점으로 결승에 올라온 코바시와 카와다, 미사와가 삼파전을 가져 코바시와 30분 제한으로 무승부가 되는데 곧바로 카와다와 대전. 6분 9초만에 패하면서 카와다에게 싱글 첫 패배를 당하였다. 5월 31일 코바시 켄타가 정식으로 초세대군을 이탈. 6월 6일에는 카와다를 꺾고 삼관 2번째 방어에 성공. 7월 25일에는 타우에를 누르고 3번째 삼관 방어에 성공. 8월 26일에는 아키야마와 태그로 스티브 윌리엄스, 게리 올브라이트의 세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나 패하였다. 9월 6일에는 아키야마의 도전을 받아 승리하면서 4번째 방어를 완수. 10월 11일에는 스티브 윌리엄스를 이겨 5번째 삼관 방어에 성공한다. 10월 21일에는 코바시 켄타를 맞아 삼관 타이틀 6번째 방어에 성공했다. 코바시 켄타와 10월 21일의 삼관전은 연간 프로레슬링 대상 베스트 바웃 부문을 수상했다. 연말의 최강 태그 리그전에는 아키야마와 태그로 출전하여 준우승의 성적을 냈다. 1월 26일에는 아키야마 준을 신무기 에메랄드 플로전으로 승리하면서 7번째 방어에 성공. 2월 28일에는 시합중에 오른쪽 눈에서 피를 흘리는 부상에도 자니 에이스를 타이거 드라이버 91로 꺾어 8번째 삼관 방어에 성공했다.
1998년 3월 31일 시합중에 오른손 새끼 손가락 인대가 끊어졌고 4월 6일에는 자니 에이스의 에이스 크러셔를 받는 도중 왼쪽 슬개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4월 18일에는 챔피언 카니발에서 아키야마 준을 물리쳐 3년만에 2번째 우승을 이루었다. 5월 1일 도쿄돔에서 카와다 토시아키에게 패하여 삼관 타이틀을 내주었다. 연이은 부상으로 만신창이가 된 미사와를 바바 사장의 명령으로 슈퍼 파워 시리즈와 섬머 액션 시리즈의 전 시합을 결장한다. 8월 22일에는 113일만에 복귀하여 9월 11일에는 오가와 요시나리와 언터쳐블을 결성했다. 10월 31일에는 코바시 켄타를 누르고 제 20대 삼관 챔피언에 올랐고 이 시합은 97년에 이어 연간 프로 레슬링 대상 베스트 바웃 부문을 수상한다. 최강 태그 리그전에는 오가와 요시나리와 태그로 출전. 12월에는 전일본의 사장인 자이언트 바바가 컨디션 난조로 병원에 입원. 미사와는 현장 책임자가 된다. 1999년 1월 22일에는 카와다 토시아키에게 패하여 삼관 타이틀을 내주었다.
베이더와 격전
2월 1일에는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무소에서 점보 츠루타, 모모타 미츠오와 함께 자이언트 바바 사장의 서거에 관한 기자 회견에 참가. 3월 6일에는 코바시 켄타와 아키야마의 버닝의 세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패배. 이 시기가 미사와가 계속된 부상과 고된 업무 등으로 프로 레슬링을 그만 둘 생각까지 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던걸로 추측된다. 5월 2일에는 베이더를 꺾고 삼관 챔피언에 등극. 하루 뒤 5월 3일에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장직에 취임. 5월 7일에는 전일본의 신체제 발표 기자 회견을 가졌고 5월 13일에는 무토 케이지와 첫 만남이 있었다. 6월 11일에는 코바시 켄타를 누르고 삼관 첫 방어에 성공. 7월 23일에는 카와다 토시아키를 맞아 지난 1월의 패배를 되갚았다. 8월 25일에는 타카야마 요시히로, 오오모리 타카오의 노 피어를 누르고 세계 태그 & 아시아 태그를 동시에 석권. 그리고 아시아 태그 타이틀을 반납한다. 9월 4일에는 5대 싱글전에서 카와다가 결장하면서 미사와가 2시합을 출전. 10월 23일에는 버닝에 패하여 세계 태그 타이틀을 내주었다. 10월 30일에는 베이더에게 패하여 삼관 타이틀도 내주고 말았다. 연말의 최강 태그 리그에는 오가와와 언터쳐블로 출전한다.
전일본 이탈
2000년 2월 25일에는 16년만에 제 1시합에 등장하여 시가 켄타로, 가네마루 요시노부를 물리쳤다. 4월 7일에는 챔피언 카니발에서 베이더로부터 최초로 항복승을 거둔다. 4월 18일에는 임원회에 챔피언 카니발을 25년만에 토너먼트제로 한것을 둘러싸고 마찰이 생긴다. 5월 16일에는 점보 츠루타 서거에 대한 기자 회견을 열었다. 5월 28일에는 고라쿠엔 대회 종료 후 긴급 임원회가 소집되어 미사와의 사장직 해임이 다수결로 가결되었다. 6월 11일에는 사장 사임 사실을 인정한다. 이틀 뒤 6월 13일 정기 임원 회의에 출석한 미사와는 3분만에 자신의 이사직 사임 의사를 전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어서 코바시, 타우에, 모모타 형제도 이사직을 사임했다. 미사와 미츠하루, 타우에 아키라, 코바시 켄타, 아키야마 준 등 전일본 프로레슬링 소속 선수와 임원, 그리고 스탭과 연습생 총 26명의 사직서가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무소에 도착. 7월 4일에는 신 단체의 이름을 주식회사 프로레슬링 노아로 결정. 7월 7일 디퍼 아리아케에서 사무소를 차린다. 7월 10일에는 디퍼 아리아케에서 기자회견을 가져 신 단체의 명칭을 노아라고 정식으로 발표. 미사와 미츠하루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한 신체제도 발표했다.
노아 개양
2000년 8월 5일. 드디어 프로 레슬링 노아 개양전이 개막. 메인 이벤트에서 미사와는 타우에와 태그로 코바시. 아키야마조를 맞아 3판 2선승제로 경기를 가져 2분만에 아키야마의 신무기 프론트 넥 락에 실신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어서 아키야마가 타우에에게 핀을 따내면서 2:0의 압도적인 스코어로 패배했다. 10월 12일에는 언터쳐블을 WAVE로 명칭을 변경. 미사와, 오가와 요시나리, 이케다 다이스케, 마루후지가 구성원이 된다. 11월 15일에는 노아를 개양하고 최초로 고라쿠엔 홀에 진출. 12월 23일에는 지난 전일본 4월 7일 흥행에서 베이더의 왼팔을 골절시킨 것으로 시작된 인연의 결착을 내기위해 베이더와 싱글 매치가 성사. 런닝 엘보우로 승리했다. 2001년 1월 13일에는 하시모토 신야와 태그로 첫 대결. 시합 후에는 하시모토가 "다음에는 싱글 매치"라고 어필한다. 그리고 이날에는 오가와 나오야와 첫 접촉. 3월 2일에는 ZERO-ONE 개양전의 메인 이벤트에 참전하여 아키야마와 태그로 나가타 유지, 하시모토 신야와 경기를 가져 승리하여 시합 후에는 대난투극이 벌어져 이에 오가와 나오야까지 개입.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3월 21일에는 GHC 헤비급 타이틀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토너먼트를 디퍼 아리아케에서 시작. 4월 2일에는 태그 파트너였던 오가와 요시나리를 꺾고 GHC 헤비급 타이틀에 한발짝 가까이 다가선다. 4월 6일에는 노아의 지상파 방송이 니혼 TV에서 방영이 시작. 첫 방송은 오오모리 타카오와 아키야마 준의 싱글 매치가 방영되었다. 4월 11일에는 GHC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아키야마 준을 만나 양자 링 아웃으로 무승부가 나자 재경기로 아키야마를 꺾으면서 결승전에 진출한다.

프론트 넥 락에 실신!
4월 15일에는 GHC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타카야마 요시히로를 만나 에메랄드 플로전으로 승리. 초대 GHC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4월 18일에는 ZERO-ONE에 리키오 타케시와 태그로 출전하여 오가와 나오야, 무라카미 카즈나리와 첫 대전하여 승리한다. 5월 18일에는 타우에 아키라를 맞아 GHC 헤비급 타이틀을 첫 방어. 하지만 7월 27일에 아키야마 준에게 패하면서 GHC 헤비급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이후 노아의 GHC 태그 타이틀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토너먼트에도 출전. 오오모리 타카오, 오오타니 신지로를 누르고 결승전에서 베이더, 스콜피오조에 패하지만 11월 30일 삿포로 대회에서 오가와 요시나리와 태그로 베이더, 스콜피오조를 누르고 제 2대 GHC 태그 챔피언에 등극. 그러나 12월 9일에 오오모리 타카오, 타카야마 요시히로의 노 피어에 태그 타이틀을 빼앗긴다. 2002년 2월 17일에는 무릎 부상으로 은퇴설까지 나오던 코바시 켄타가 395일만에 복귀. 미사와는 코바시와 태그를 이루어 나가타 유지, 아키야마 준과 태그 매치로 맞붙지만 코바시가 아키야마에게 리스트 클러치 익스플로이더에 핀을 내주면서 패배. 이날 코바시는 나가타의 무릎공격으로 다시 무릎 부상을 당하여 장기경장에 들어갔다. 4월 7일에는 후유키 고도와 15년만의 싱글 매치를 가져 승리했다. 5월 2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도쿄돔 대회에서 쵸노 마사히로와 드림 매치를 성사시키지만 30분 제한 무승부로 종료. 9월 7일에는 모리시마 타케시, 리키오 타케시의 GHC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지만 패배. 9월 23일에는 타카야마의 GHC 헤비급 밸트에 도전. 수십발에 이르는 엘보우를 타카야마의 얼굴에 적중. 런닝 엘보우로 승리하여 GHC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2003년 1월 10일에는 지난 도쿄돔에서 경기했던 쵸노 마사히로와 태그로 코바시 켄타, 타우에 아키라와 태그로 맞붙었지만 코바시에게 수직낙하식 브레인 버스터에 패하였다. 3월 1일에 코바시 켄타와 대전. 버닝 해머에 패하였다 이 시합은 연간 프로레슬링 대상에서 베스트 바웃 부문을 수상한다.
6월 6일에는 사노 타쿠마를 꺾었으며 9월 12일에는 오가와 요시나리, 이노우에 마사오와 태그를 이루었으나 타우에 아키라, 이케다 다이스케, 모하메드 요네에 패하였다. 11월 1일에는 리키오 타케시와 태그로 사노 타쿠마, 타카야마 요시히로를 꺾는다. 12월 6일에는 데뷔전을 치루었던 고시나가 시로와 인연의 싱글 매치를 가져 고시나가의 신무기 사무라이 드라이버 84를 견뎌낸 미사와는 신무기인 변형 에메랄드 플로전으로 승리했다. 2004년 1월 10일에는 오가와 요시나리와 태그로 나가타 유지, 타나하시 히로시를 누르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유출되었던 GHC 태그 타이틀을 다시 되찾아 왔다. 3월 6일에는 이케다 다이스케, 모하메드 요네를 누르고 GHC 태그 첫 방어에 성공. 4월 25일에는 마루후지 나오미치, KENTA를 꺾었다. 6월 11일에는 미국의 프로 레슬링 아이언으로 원정을 떠났다. 7월 10일 도쿄돔에서 드디어 무토 케이지와 태그로 첫 대결. 오가와 요시나리와 태그로 출전하여 무토 케이지, 타이요 케어를 맞아 GHC 태그 타이틀전을 가져 타이요 케어를 변형 에메랄드 플로전으로 승리했다. 시합 후에는 코지마 사토시의 도전을 악수로써 대답. 전일본 프로레슬링 7월 18일자 흥행에 등장. 코지마 사토시를 맞아 5년동안 봉인되었던 기술 타이거 드라이버 91로 눌렀다. 8월 10일에는 할리 레이스의 WLW에 참전.

천재, 천재를 만나다.
10월 31일에는 무토 케이지의 데뷔 20주년 경기에서 무토와 천재 태그를 결성. 하세 히로시, 사사키 켄스케의 하세켄 콤비를 꺾었다. 2005년 1월 8일에는 리키오 타케시와 태그로 고시나가 시로, 그리고 노아에 첫 상륙한 텐류 겐이치로를 눌렀다. 텐류와는 15년만의 경기였다. 1월 23일에는 스콜피오, 더그 윌리엄스에 패하여 GHC 타이틀을 내주었다. 3월 5일에는 스즈키 고타로와 태그로 오오타니 신지로, 타카이와 타츠히토와 경기를 가졌지만 패배. 3월 19일에는 영국의 TWC에 원정을 떠났다. 4월 24일 스즈키 고타로와 태그로 스즈키 미노루, 마후루지 나오미치에게 패했다. 그리고 이날 카와다 토시아키가 노아 링에 처음으로 올라 미사와에게 정중하게 도쿄돔에서 경기할 것을 요청. 이를 미사와가 받아들이면서 7월 18일에 있을 도쿄돔 대회에서 둘의 대결이 확정된다. 5월 14일에는 카와고에 대회의 제 1시합을 마치고 곧장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도쿄돔 대회에서 후지나미 타츠미와 태그로 쵸노 마사히로, 쥬신 "썬더" 라이거를 눌렀다.

카와다 토시아키와 "운명"의 악수
7월 18일 도쿄돔에서 열린 Destiny 2005에서는 5년만에 숙명의 상대 카와다 토시아키와 싱글 매치. 에메랄드 플로전과 타이거 드라이버 91이 모두 나온 상황에서 엘보우 패드로 승리했다. 경기 후 재경기를 요구하는 카와다의 마이크 어필에 분개한 미사와는 시합 후에 카와다와의 절연을 선언. 9월 18일에는 무도관에서 리키오 타케시의 GHC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하나 패배. 이날 패배로 인해 1992년부터 계속 이어져오던 싱글 타이틀 도전 성공율 100%의 기록이 중단되었다. 10월 1일 레슬-1 요요기 대회에서는 아케보노와 태그로 첫 대결. 런닝 엘보우로 승리했다. 11월 5일 무도관에서는 텐류 겐이치로와 18년만의 싱글 매치를 가져 승리. 12월 4일 요코하마 문화 체육관 대회에서는 태그 매치로 시바타 카츠요리와 첫 대결.

운명의 대결
2006년 1월 22일의 The Frist Navigation 2006 최종전이 열린 무도관에서는 NOAH 매트에서는 처음으로 (첫대결로부터는 1년 3개월만에) 6인 태그매치로 사사키 켄스케와 대전했다. 3월 5일 Navigate for Evolution 2006 최종전 무도관 대회의 4대 싱글매치에서 모리시마 타케시와 대전하여 승리. 7월 16일 Summer Navigation 2006 최종전에서는 아키야마 준과 태그로 2년만에 복귀하는 타카야마 요시히로의 복귀전 상대로 나섰다. 당초 이 시합에서 타카야마의 태그 파트너로 코바시 켄타가 나올 예정이었으나 신장에 종양이 발견되어 결장이 불가피해져 코바시의 대타로 사사키 켄스케가 타카야마의 태그 파트너로 나와 격전 끝에 승리했다. 9월 12일에는 NOAH, 제로원 MAX를 중심으로 한 프로레슬링 통일 연맹인 글로벌 레슬링 연맹 (Global Pro-Wrestling Alliance)이 발족.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12월 10일 Great Voyage 2006 무도관 대회에서 마루후지 나오미치의 GHC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 설붕식 에메랄드 플로젼으로 승리하여 제 11대 GHC 헤비급 챔피언에 올라 7회의 방어에 성공했다.
└ 타이틀 방어 기록
2007년 1월 21일 일본 무도관 vs. 모리시마 타케시
2007년 4월 28일 일본 무도관 vs. 사노 타쿠마
2007년 6월 3일 홋카이도 스포츠 센터 vs. 바이슨 스미스
2007년 7월 15일 일본 무도관 vs. 타우에 아키라
2007년 9월 29일 오사카 현립 체육관 vs. 마루후지 나오미치
2007년 10월 27일 일본 무도관 vs. 사모아 죠
2007년 11월 3일 미국 맨하탄 센터 그랜드 블룸 vs. KENTA (ROH 원정)

3번째로 허리에 감는 GHC 타이틀
2007년 1월 21일의 무도관 대회에서 모리시마 타케시를 상대로 벌인 GHC 방어전에서 경기 초반에 장외 매트 위에 파워 밤을 맞고 뇌진탕이 온 상황에서도 계속 경기하여 런닝 엘보우로 승리. 첫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장외에서 파워밤을 맞은 상황은 미사와의 생명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위험했다. 3월 5일 무도관 대회에서는 5대 싱글 매치로 스기우라 타카시와 대전. 후두부에 킥을 허용하여 의식을 잃을 뻔 하지만 마운트 상태에서 엘보 연타로 TKO 승을 거두었다. 9월 9일에는 시오자키 고와 태그로 후지나미 타츠미, 니시무라 오사무와 대전. 12월 9일에는 DDT에 거물 레슬러 X로 등장. 스즈키 고타로와 태그로 타카기 산시로, 머슬 사카이를 이겼다. 당초 미사와를 위장해 따라하던 이치미야 쇼이치와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이치미야가 결장하여 위장 vs 진짜 대결은 무산되었다. 12월 2일에는 아키야마 준과 태그로 코바시 켄타의 복귀전의 상대를 맡았다. 12월 10일에는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선수에 선정. 데뷔 이래 26년만에 처음으로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감동의 코바시 켄타 복귀전
2008년 3월 2일에는 모리시마 타케시의 GHC 타이틀 도전을 받아 격투 끝에 패배하여 GHC 헤비급 타이틀을 내주었다. 12월 4일에는 리얼 저팬 프로레슬링 고라쿠엔 홀 대회에서 초대 타이거 마스크인 사야마 사토루와 첫 대결을 태그 매치로 격돌. 2009년 1월 4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도쿄돔 대회에 참전. 스기우라 타카시와 태그로 나카무라 신스케/고토 히로오키와 대전하나 패배했다.

신일본과 대항전의 시작에 직접 나섰다.
2009년 들어 노아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공중파 방송인 NTV의 중계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설상 가상으로 서서히 노아의 인기가 식으면서 관중 동원률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노아의 반복되는 매치업에 팬들이 식상함을 느끼면서 시작된 것으로, 이미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온 일이다. 이에 위기를 느낀 미사와는 여러 개혁을 시작했는데 정월의 신일본 도쿄돔 대회가 그 시작이다. 또한 무기한 해외 무자 수행을 떠나있던 시오자키 고를 불러들이고, 부상 중이던 코바시 켄타가 복귀하면서 다시금 순항을 준비했다. 4월부터 열린 글로벌 태그 리그전에 시오자키 고와 참전. 5월 6일 일본 무도관 대회에서 모리시마/켄스케 조와 결승에서 격돌. 시오자키의 대 활약으로 리그전 우승. 리그 우승의 혜택으로 GHC 태그 챔피언인 사이토 아키토시/바이슨 스미스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6월 13일, 히로시마 현립 종합 체육관 그린 아레나 대회의 메인 이벤트로 사이토/바이슨의 GHC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게 된 미사와 미츠하루는, 시합이 약 20분이 지났을 무렵, 사이토 아키토시의 고각도 백드롭이 미사와에게 작렬. 직후 심판인 니시나가 슈이치가 “움직일 수 있나?”라고 묻자 미사와는 “움직일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말이 되었다. 시합은 미사와의 대답을 듣고 즉시 니시나가가 레프리 스톱으로 사이토/바이슨의 승리로 마무리.
기술을 받은 미사와가 “움직일 수 없다.”라고 대답한 직후, 그의 심장은 멈춰 버렸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트레이너가 뛰어들었고, 관객 중 의사가 있어, 곧 심폐 소생술을 시작했고, 심폐 소생술을 하려면 땀을 닦아 내야한다는 말에 노아의 선수들이 티셔츠를 벗어 열심히 그의 몸을 닦고, 심폐 소생술에 들어갔다. 선수들이 사장님!을 외쳐도 그는 일어나지 못했고, 당시 맥박은 40. 곧 구급차로 히로시마 대학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오후 10시 10분에 사망이 확인 되었다. 향년 46세.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던 그였는데… 그렇게 떠나버렸다.
사망 시 진단 결과는 의사의 판단으로 가족에게만 고지되었고, 다음 날 14일에 히로시마현 경찰에서 사인은 백드롭에 의해 머리 부분을 강타한 것에 의한 경수 손상이며, 목뼈 내부까지 부러져 중추 신경 손상을 입힌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티비에서도 그는 힘들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5월 6일의 글로벌 태그 리그 결승전에서는 거의 나서서 경기하지 않고 거의 시오자키가 핸디캡 매치를 벌이는 수준이었다고 까지 한다. 노아도 어려움에 빠져있던 상황에서 사장 업무와 선수를 겸업으로 하다 보니 이중으로 지쳐 있었고, 그러던 중 백드롭을 미처 제대로 접수 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사고가 벌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매트계는 충격에 빠졌다. 모든 이들이 거짓말이길 빌었다. 그를 쫓아오던 카와다 토시아키는 믿기지 않는다며 망연자실 했으며, 영원의 라이벌 무토 케이지는 나와의 대결은 어떻게 하냐며 허탈함과 충격을 금치 못했다. 노아의 선수들은 대성통곡했다. 특히 아키야마는 사망 선고를 듣고 실신해 버렸으며, 헤르니아 부상을 이유로 가지고 있던 GHC 헤비급 타이틀을 반납해버렸다.
2009년 안으로 미사와가 은퇴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나카다 류 섭외 부장이 밝히면서 더욱 안타까움을 더했으며… 은퇴 후 다른 은퇴 선수들을 위한 사업을 구상 중이었다고 한다. 은퇴 후에도 그는 쉬지 않고 정력적인 활동을 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일본 단체 뿐만 아니라, WWE, TNA, ROH 등 북미 단체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홈페이지에 추모의 글을 실리기도 했다. 90년대 최고의 레슬러 중 하나로 군림하면서,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의 매니아들에게도 그의 엄청난 실력은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단체를 살리기 위해 지쳐있는 몸으로 허리에 타이틀을 두르고 격한 시합을 계속 해야만 했다. 그러는 와중에 신세대들은 미사와 미츠하루라는 벽을 넘지 못했고, 영원히 넘지 못했다. 이승에서 너무 지쳤던 그이기에 저승에 가서는 쉬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RIP.
타이틀 획득 :
- Triple Crown (5x):
1. Besiegt Stan Hansen (22.08.1992) | Unterliegt Steve Williams (28.07.1994)
2. Besiegt Stan Hansen (26.05.1995) | Unterliegt Akira Taue (24.05.1996)
3. Besiegt Kenta Kobashi (20.01.1997) | Unterliegt Toshiaki Kawada (01.05.1998)
4. Besiegt Kenta Kobashi (31.10.1998) | Unterliegt Toshiaki Kawada (22.01.1999)
5. Besiegt Vader (02.05.1999) | Unterliegt Vader (30.10.1999)
- AJPW World Tag Team Title (6x):
1. (mit Toshiaki Kawada) Besiegen Terry Gordy & Steve Williams (24.07.1991) | Vakant (06.12.1991)
2. (mit Toshiaki Kawada) Gewinnen Real World Tag League (04.12.1992) | Unterliegen Terry Gordy & Steve Williams (30.01.1993)
3. (mit Kenta Kobashi) Gewinnen Real World Tag League (03.12.1993) | Vakant (??.11.1994)
4. (mit Kenta Kobashi) Gewinnen Real World Tag League (10.12.1994) | Unterliegen Toshiaki Kawada & Akira Taue (09.06.1995)
5. (mit Jun Akiyama) Besiegen Toshiaki Kawada & Akira Taue (23.05.1996) | Unterliegen Steve Williams & Johnny Ace (05.06.1996)
6. (mit Yoshinari Ogawa) Besiegen Takao Omori & Yoshihiro Takayama (25.08.1999) | Unterliegen Kenta Kobashi & Jun Akiyama (23.10.1999)
- PWF Tag Team Title (1x):
1. (mit Jumbo Tsuruta) Besiegen Stan Hansen & Ted DiBiase (03.07.1987) | Unterliegen Stan Hansen & Ted DiBiase (11.07.1987)
- All Asia Tag Team Title (2x):
1. (mit Kenta Kobashi) Besiegen Dan Kroffat & Doug Furnas (09.04.1990) | Vakant (17.05.1990)
2. (mit Yoshinari Ogawa) Besiegen Takao Omori & Yoshihiro Takayama (25.08.1999) | Vakant (25.08.1999)
- GHC Heavyweight Title (3x):
1. Besiegt Yoshihiro Takayama (15.04.2001) | Unterliegt Jun Akiyama (27.07.2001)
2. Besiegt Yoshihiro Takayama (23.09.2002) | Unterliegt Kenta Kobashi (01.03.2003)
3. Besiegt Naomichi Marufuji (10.12.2006) | Unterliegt Takeshi Morishima (02.03.2008)
- GHC Tag Team Title (2x):
1. (mit Yoshinari Ogawa) Besiegen Vader & Scorpio (30.11.2001) | Unterliegen Takao Omori & Yoshihiro Takayama (09.12.2001)
2. (mit Yoshinari Ogawa) Besiegen Yuji Nagata & Hiroshi Tanahashi (10.01.2004) | Unterliegen Scorpio & Doug Williams (23.01.2005)
- NWA International Jr. Heavyweight Title (1x):
1. Besiegt Kuniaki Kobayashi (31.08.1985) | Vakant (1986)
토너먼트/리그전 우승 :
- Real World Tag League 1992: Mitsuharu Misawa & Toshiaki Kawada gewannen ein Round-Robin Tournament.
- Real World Tag League 1993: Mitsuharu Misawa & Kenta Kobashi gewannen ein Round-Robin Tournament.
- Real World Tag League 1994: Mitsuharu Misawa & Kenta Kobashi gewannen ein Round-Robin Tournament.
- Champion Carnival 1995: Mitsuharu Misawa besiegt Akira Taue (27:03) mit einem Tiger Suplex Hold.
- Real World Tag League 1995: Mitsuharu Misawa & Kenta Kobashi besiegen Toshiaki Kawada & Akira Taue (27:04) nach einer Moonsault Press von Kobashi gegen Taue.
- Champion Carnival 1998: Mitsuharu Misawa besiegt Jun Akiyama (22:05) mit einem Running Elbow Smash.
- GHC Heavyweight Title Tournament (2001): Mitsuharu Misawa besiegt Yoshihiro Takayama (21:12) mit dem Emerald Frosion.
- One Day Heavyweight Six Man Tag Tournament (2008): Mitsuharu Misawa, Takeshi Morishima & Mohammed Yone besiegen Jun Akiyama, Takeshi Rikio & Takashi Sugiura (18:14) nach einem Muscle Buster von Yone gegen Sugiura.
- Global Tag League 2009: Mitsuharu Misawa & Go Shiozaki gewannen ein Round-Robin Turnier.
에피소드 및 어록 :
학교 졸업 후 진로를 담임 선생님께 프로레슬러라고 말하자, “장난 치지 말라”며 혼났다고 한다. 그러나 미사와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레슬링의 명문인 아시카가 공업 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권유했다. 그 외에는, 단신으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을 희망한 나머지 사무소를 찾아가 마침 자리에 있었던 점보 츠루타에게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세요”라는 말을 듣고 되돌아 온 에피소드도 있어, 프로레슬러를 어릴 적부터 꿈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추어 레슬링 부 시절에도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은데 이런거 해봐야 소용 없다”며 아마추어 레슬링은 시시했다고 말했다. 본인은 “아마레스를 계속 했다면 올림픽 선수 정도로 될 자신이 있었지만 시시했기 때문에 빨리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학생 시절, 체조부에 있어 그것이 타이거 마스크의 베이스가 된 것을 단언하고 있다.
체력적으로는 프로레슬링 전향 전부터 완성되어 있어 “프로는 (트레이닝이) 편하다. 고교 시절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원래 체격이 좋았지만 고교 레슬링부 시절은 감량이 어려워 프로레슬링 데뷔 당시는 주니어 헤비급이었다. 반대로 마음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프로레슬링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욕구로는 움직이지 않고, 대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자단체 뿐 아니라, 항상 프로레슬링계 전체를 생각해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조리있게 교섭해 온 단체, 선수에게는 이해 관계가 쉽게 성립되어, 타 단체의 큰 행행이 있을 시에는 때로 직접 참전하여 꿈의 빅매치를 실현시켰다. 또한 의리와 인정이 많아, 곤란에 빠진 선수나 단체에 은혜와 원수를 떠나 손을 빌려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일본을 이탈하였을 시절, 이미 계약이 잡혀있던 흥행을 캔슬하지 않고 출장했다. “요청이 없어도 나올 생각이었다. 전일본 쪽보다, 흥행주 쪽에 미안하니까.”
“불합리 대왕”으로 활약했던 후유키 히로미치가 갑자기 미사와를 표적으로 삼아, 대전을 피하는 미사와에게, 미사와를 태운 버스를 달리기로 뒤쫓기, 노아 사무소 까지 마라톤을 하는 등의 드라마를 전개. 미사와도 후유키와 사생활에서는 전일본 시절부터 친구이며, 노아 개양 시에도 (사장 레슬러의 선배로서) 조언을 해준 후유키의 열의에 따라 2002년 4월 7일에 싱글 매치를 가졌다. 그 다음날 병원의 검사에서 후유키가 대장암에 걸린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FMW가 붕괴. 신단체 WEW의 개양도 하지 못하고 기반이 없었던 후유키를 위해 미사와는 디퍼 아리아케 4월 14일 대회를 곧바로 확보해, 노아 주최로 후유키의 은퇴 기념 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 수익의 전부를 후유키에게 주었다고 한다. 후일 미사와는 이 일에 대해 “별로 깊은 의미는 없어요. 후유키씨는 좋은 친구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2001년 2월, 당시 노아 소속 선수였던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종합 격투기 (PRIDE)에 진출할 때, 타카야마가 준비 기간을 갖고 싶다며 탈퇴를 신청했다. 이 때 미사와는 “준비 기간을 갖고 싶으면, 우리 소속이어도 상관없다. 그 기간은 결장해고 좋다.” “프로레슬링을 계속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돌아와도 좋아”라고 이야기 (타카야마가 자서전으로 고백.). 사장으로서 배려를 보였다. 그 때문에 타카야마도 타 단체에 비해 메인에서 활약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의리로 노아의 링에 계속 오르거나, 휴양 중에도 게스트 해설로 등장 해 노아와 관계를 양호하게 지속했다. 복귀전을 노아에서 치른 것도 미사와의 인품에 의한 것이 크다고 보여진다.
사려 깊고 예의 바른 것으로 알려진 쵸노 마사히로와는 각자 소속 단체의 신인 시절, 주간 플레이 보이 대담에서 만나, 의기 투합. 전일본과 신일본의 라이벌 관계가 아직 남아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노키씨와 바바씨의 시대가 아니다. 나 외의 세대가 스스로 움직여 프로레슬링계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쵸노의 말에, “지금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서로 책임을 지는 위치가 되면 쵸노씨라면 협력할 수 있다.” 라고 대합했다. 그 약속을 지키는 의미로 실현된 것이, 후의 신일본과 교류전이다. 신일본에서는 일대일 승부를 벌였지만, 후의 드림 태그 결성 시에는 선역인 미사와와 악역 쵸노를 넘어 첫 태그라고 생각되지 않는 절묘한 호흡을 보였다. 또 노아 첫 돔대회에 개인적으로 미사와를 찾아와 정중히 대전을 요구한 코지마 사토시의 성실함을 마음에 들어해 일대일 대결을 실현. 분열 이후 절연 상태로 더 이상 오를 것 같지 않았던 전일본의 링에, 7월 18일 양국 국기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철저히 상대의 기술을 받아, 상대를 돋보이게 한 다음 자신이 이긴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왕도 프로레슬링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그이기에, 상대를 돋보이게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시합을 끝내는 파이트 스타일인 하이 스퍼트 레슬링을 구사하는 선수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특히 초슈 리키는 저팬 프로레슬링의 일원으로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했을 무렵, 일방적인 시합을 했던 것이 계기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하시모토 신야와 만남이 단기간에 끝난 것도 같은 원인이라는 설도 있지만, 같은 공격형의 한센이나 윌리엄스와 몇 번이나 시합을 했던 것이나, 제로 원 맥스와는 현재도 교류가 계속되어, 공격형의 타카이와를 GHC 주니어 챔피언으로 올린 것 등, 여러가지 사실을 보았을 때, 단체 간의 이해관계 등의 문제로 하시모토와의 대립이 금방 끝났을 가능성도 생각 할 수 있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유치원 생에게 민화 “큰 하부”이야기를 실제로 보여주자는 기획에서 유치원생들과 줄다리기 하는 “하부”역으로 미사와가 등장. 평소 초록 링 코스튬에 하부의 머리 장식을 쓰고 거기다 웃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 줄다리기에서 유치원생들에게 지고, 땅에 질질 끌린 미사와의 모습이 골든 타임에 방영 되었다. 전일본 소속 선수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등장하게 된 최초기여서, 이 기획은 팬 사이에서 이야깃거리가 되어, 미사와를 “하부”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본래 코바시 켄타가 출연할 계획이었지만, 코바시가 고열로 앓아 미사와가 대신 출연했다.
성실한 인상이 강하지만, 한편으로 프로레슬링계 최고의 저질 농담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프로레슬링 잡지의 독자 투고란서는 미사와의 저질 농담이 정평이 나 있을 정도이다. 적극적으로 텔레비전 출연을 시작한 당초 과묵한 캐릭터를 지켰지만, 점차 텔레비전에 익숙해지자, “(코바시와 시합에서 패배한 감상을 추궁 당하자) 코바시에게는 먼저 가버려 미안해요. 하는 기분입니다.”, “난 가슴성인이 아니야”, “응 (발기했을 때 미사와 특유의 표현)”, “(타 단체의) 프로레슬링 비디오를 보느니 성인 비디오를 보는 게 좋아.”등 저질 농담을 연발. 전일본 소속 시절 대학의 학원제에 몇 번이나 초빙되어 거기서 행해진 토크 쇼에서도 저질 농담을 했다. DJ로서 올나잇 일본에 등장했을 때에는 이야기 대부분이 저질 농담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코바시가 청취자 명을 기타노라는 이름으로 전화하자 “너 코바시지!”라며 알아 채고 곧장 저질 농담으로 괴롭혔다.). “꽁치 저택”에서는 저질 농담 금지를 해금하자, 그날의 토크 왕으로 뽑였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에로 사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미사와의 저질 농담은 재미 있어서 팬들의 호응이 괜찮았지만, 한편 “이미지가 깨진다”는 비판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며, 그 건으로 섭외 부장인 나카다 류에게 “버라이어티 출연 금지령”이 내려져 출연을 자숙했다.
연말의 스포츠 특별 프로에서 우유를 입에 머금고, 연예인의 개그를 보고 우유를 토해내지 않는 게임이 있었다. 다른 출연자가 차례차례로 함락 되어가는 가운데, 미사와만이 참아내는 쾌거 (?)를 달성. 덧붙여 미사와는 그때 식은땀을 흘리고 있어 실제로는 괴로웠던 듯.
미사와는 그 격전을 치루는 모습으로 일본 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일본 밖의 팬의 상당수는 “과묵한 미사와”의 이미지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사와가 출연한 법률 상담 프로그램이 YouTube에 올라왔을 때, 그 모습에 경악하여 “미사와가 웃고 있어!” 같은 영문 코멘트가 올라왔다.
굉장한 음치이다. 후유키 히로미치는 만화 잡지 “만화 선데이”에 기고했던 에세이 “간선초악”에서 “미사와는 좋은 녀석이지만, 하나 곤란한 것이 있다. 그것은 노래다. 엄청난 음치인데다, 마이크를 잡으면 놓질 않는다”고 기록했다.
2005년 12월 22일 발매 된 X-BOX 360용 소프트 “레슬 킹덤” 이벤트에서 게임을 좋아하는 것을 밝혔다. 미사와는 “게임 좋아합니다. X-BOX 360, 예약했어요. 빨리 사지 않으면 손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몰라서, 그 때 사지 않으면”이라고 굉장히 게임을 좋아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레슬 킹덤”을 플레이 한 감상은 “해보니 재밌네요. 하는 사이에 손에 땀이 잡히고, 그러다 보니 온 몸에 땀이 흘러서 그만 두었습니다”라고 코멘트. “게임은 현실 도피로 하는 것이 좋다”는 신조로 평상시에는 슈팅과 프로레슬링 게임은 하지 않는다. 패미통에서 미사와는 좋아하는 게임에 패밀리 판 “파이어 엠블렘 암흑용과 빛의 검”을 꼽았다.
오타쿠 계열에 상당히 조예가 깊다. 특촬 히어로의 피겨 수집을 취미로 밝히고 있다. 가라오케에 가면 어린 시절 정말 좋아했던 마이너 특촬물 주제가를 노래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서 곤란에 빠진다고.
만화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행본은 거의 사지 않고, 잡지 연재로 본다고 한다. 과거 심부름꾼 마루후지는 “미사와 사장의 심부름꾼이 제일 처음 기억할 것은 잡지 발매일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미사와 본인은 “오타쿠”인 것을 완강히 부정.
타이거 마스크 시절 부담감으로 상당히 고뇌에 빠져있었으며, 왼 무릎 부상으로 장기 입원 했을 때 “이제 타이거 마스크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후일 말했다. 복면을 벗은 직 후 인터뷰에서 “응원해 준 아이들에게는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타이거 마스크 시절 그 도약력을 뽐내던 미사와는 선배 레슬러에게 “너라면 달려오는 차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다.”라는 말을 듣자 조용히 차도로 나와 달려오는 택시를 뛰어넘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택시 뛰어넘기는 여러가지 일화가 있어, 멕시코 원정 중에 시합 회장에서 돌아갈 때 선배에게 “택시를 드롭킥으로 세워라”라고 강요당해 어쩔 수 없이 달리는 택시에 드롭 킥을 했는데, 택시를 뛰어넘어 버려, 이것을 안 바바가 미사와를 데려와 타이거 2세로 임명했다는 일화가 있다.
타이거 마스크설로 가장 유력한 것은, 멕시코 원정시절 국제 전화로 “너 탑로프에 올라갈 수 있냐?”라는 바바의 물음에 “네”라고 미사와가 대답하여 곧장 귀국. 타이거 마스크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미사와의 말에 의하면 당초 멕시코로 같이 원정을 간 코시나가 시로가 타이거 마스크가 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츠루타 초월을 완수한 후, 윗 세대와 타이틀전에서 좀체 이기지 못했던 미사와는 1992년 한센의 삼관 타이틀에 도전하면서 “여기서도 지면 난 더 이상 삼관에 도전할 이유가 없다. 최하 1년은 도전하지 않겠다”고 배수의 진. 이렇게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승리를 장식. 이후 2005년 리키오 타케시에게 도전해서 질 때까지 13년 간 싱글 타이틀 매치에서 자신이 도전자로서 도전할 때는 승률 100%를 자랑하고 있었다.
1995년 챔피언 카니발에서 카와다의 킥을 맞고 왼쪽 안와 골절. 일반인이라면 즉시 수술하여 전치 3개월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소속 단체였던 전일본에는 휴업 보상이 없기 때문에 계속 출장하여 마침내 챔피언 카니발을 제패하여 첫 우승. 보통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터프함을 지닌 프로레슬러지만, 이것은 이례쩍이다. 또 2년 후 챔피언 카니발에서도 시합 중 오른쪽 새끼 손가락 단열, 왼쪽 종지뼈 골절을 당해도 우승했다. 부상을 입었을 때에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는 타입이다.
스승인 바바가 사망한 것으로 발단한 전일본의 혼란때, 고뇌한 나머지 “이제 프로레슬링을 그만 두려고 생각했다. 어쩐지 귀찮다고 생각했다” 라는 약한 소리를 했던 적이 있다.
1993년 일본 무도관 대회에서 미사와 대 카와다전에서 격렬한 공방에 텔레비전 해설을 하던 바바가 “시합 전개가 너무 고도의 공방이어서 더 이상 나도 모른다”고 무심코 말했다.
언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카와다를 일방적으로 싫어하여 여러 인터뷰에서 카와다를 “싫다”고 말했다 (적어도 초세대군에서 카와다가 이탈한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편 카와다는 미사와를 일관해서 계속 숭배하고 있다.
매우 오픈적인 성격으로 자서전 등에서 자신의 성 경험부터 풍속력까지 밝혀버렸다. 현재의 부인과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밝혔으며, 무릎 부상 시에도 담당 의사에게 “정상위는 할 수 있습니까”라고 농담인지는 몰라도 말했다고 한다.
1998년 미사와 대 코바시의 삼관전에서는, 사상 최고의 격투를 선보였고 해설석의 바바가 아무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1997년 1월 20일에 오사카 프릿츠 체육 회관에서 행해진 코바시와 삼관전 후 일본 TV 계열로 방송되던 스포츠 MAX에 출연했을 때, 방송 개시시 프로레슬링 놀이 비슷한 짓을 하던 캐스터가 삼관전 영상을 실제로 보고 태도를 바꾸어 미사와에게 “상대의 생명을 끊어버리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말했다. 방송 종료 후에는 방송 직전의 행위를 미사와에게 사과했다.
미사와는 유일하게 전일본의 넘버 1, 2, 3로 불리는 자이언트 바바, 점보 츠루타, 텐류 겐이치로의 3인을 상대로 핀폴승한 일본인 레슬러이다. 단지 바바를 눌렀을 때는 “부모와 자식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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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3/14 18:41 | 레슬러 프로필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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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심은 드는 레슬러...... 참 여러모로 대단한 인간같음
잘봤습니다.